종강 후 일주일 경과
그동안의 일상을 짧게 적은 뒤 양치하고 자야겠다.
18일에 마지막 페이퍼 내고 오늘까지 일주일간 정말 초폐인 모드로 살았다.
이렇게 그냥 암것도 안하구 놀거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냥 즐길 것을,
그러지도 못했다. 제대로 놀지도 못했단 얘기.
우선 밤낮이 완전 바뀌어서 매일 새벽 네다섯시에 자고 그다음날 네시쯤 일어나고,
이미 해는 져 있고, 좀 씻고 옷입고 나가보면 이미 거리에 사람도 많이 없는 한밤중 ...
여긴 요즘 저녁 6시만 돼도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초우울.
극지방에 사는 것 같다. ㅠㅠ (물론 햇님 있을 때 자구 있는 내 잘못!)
정말 좀비처럼 며칠 그렇게 살다보니 참 쉽게도 우울해지더라.
신호 바뀌는 거 기다리면서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괜히 정처를 모르겠고 ㅋㅋ
며칠 전에는 갑자기 예배 드리고 나오는데 너무 쓸쓸해서 진부하게도 네일 폴리쉬를 사왔는데,
한국에서부터 사고싶었던 유명한 색이었지만 오늘 밝은 불빛 아래서 똑똑히 보니깐 색깔은 진짜 촌스럽다. 내 손이랑 안 어울리는듯. 두번 덧칠했는데 한번 더 해볼까봐 ...
아 우울해.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방학되면 늘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갑자기 폭풍 기말 모드에서 고무줄 풀리듯이 놓여나면 아무때나 먹고 자는 좀비 생활 한동안 하다가
무계획 + 무목적 때문에 우울해짐 ...
그래도 한국에는 날 괴롭히는 사람들과 짠짠한 햇살 때문에 괜찮았는데,
여기선 일조량 부족 때문에 우울이 싹트기 쉬운 환경이다.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서 곰팡이가 잘 자라는 것 같은 그런 원리.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낮에 일어나 남친이랑 스카이프를 한참 하다가
남친 재워놓고 화면 앞에 인형들 모아놓고 혼자 첼시마켓에 다녀왔다.
그릇 사러 갔었는데 그릇 가게는 문을 일찍 닫았다. (우리나라는 공휴일이면 대목이라고 영업 연장하는데, 여기는 24일/25일에 닫는 곳도 매우 많다. 혹은 일찍 문 닫거나... 25일은 심지어 교회 예배도 없다. 25일은 모두가 가족과 보낸다면서 ... 놀랍지 않음?)
마켓에 가서 파스타 만들거리를 샀다. 생연어랑 고르곤졸라 치즈, 생새우, 브로콜리 등등.
집에 와서 연어크림파스타를 만들어먹었더니 느끼함에 머리가 몽롱해졌음...
이대로 자긴 아까워서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내려 먹었다.
에스프레소 투 샷을 컵에 따르고, 우유랑 얼음이랑 메이플 시럽을 넣으면서 문득, 나는 선천적으로 (?)
외로움을 안 탄다기 보다는 그 외로움을 상쇄할만한 많은 것들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투 두 리스트. 나 이거 너무 좋아한다!
할 일의 목록을 만들다보면 언제나 머리가 맑아지는 나 - ㅎ
비록 그것의 절반의 절반도 못 끝내고, 책상 서랍에는 언제나 반쯤 쓰다 싫증나 던져놓은 플래너가 가득한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토닥토닥해줘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오늘은 영어 공부 좀 했어-
그거 쪼금 했다고 룸메랑 말할 때 영어가 훨씬 잘 된다. 말랑말랑한 나의 뇌...
이제 양치하고 자야지. ♡